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-헝가리 관계 (문단 편집) === 조선 후기 ~ 해방 이전 === 한국 문헌에서 [[헝가리]]라는 나라가 최초로 등장한 것은 [[조선]] 후기의 문신 이유원(李裕元 1814~1888)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임하필기(林下筆記)라는 책에서이다. 이 책의 이역죽지사(異域竹枝詞)는 [[동남아]]와 서구 여러 나라의 지리적 위치나 민족, 토산물 등을 한시로 읊은 것인데, 그 중 헝가리에 대한 시 한 편이 있다. 여기서는 '옹가리아 翁加里亞'라고 표기하였다. 이는 헝가리의 [[영어]] 발음에 거의 근접한 [[음역(번역)|음역어]]로서 이유원이 [[청나라]]에 사신으로 갔다가 귀국할 때 전별 선물로 받은 황청직공도(皇淸織貢圖)에 나오는 [[한자]] 표기와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. 청나라 언론인이었던 [[량치차오]]는 코슈트의 일생을 다룬 전기를 펴낸 것을 1906년 한국에서 『흉아리 애국자 갈소사전(匈牙利 愛國者 噶蘇士傳)』(이하 갈소사전)이란 이름으로 번역되기에 이른다. '흉아리'는 헝가리의 음역어이고, '갈소사(噶蘇士)'는 라요시 코슈트를 칭한다.[[https://m.news.naver.com/read.nhn?mode=LSD&sid1=103&sid2=245&oid=025&aid=0002894240|#]] [[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]] 당시 1892년에 조선과 수교한 바 있다. [[을사조약]] 체결 이후 [[고종 황제|고종]]은 통상조약의 거중 조정항목을 근거로 오스트리아-헝가리를 비롯하여 영, 미, 독, 프랑스, 이탈리아 등 구미[열강]]에 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병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조치를 기대했다. 하지만 [[러일전쟁]]의 결과로 열강들 사이에서도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묵인하기로 대세가 결정되었고 일본도 이들 국가에 한반도에서 종전까지 누리고있던 이익을 보장할 것을 통고한 마당에 오스트리아-헝가리 제국을 비롯한 구미열강이 딱히 한국에 해줄만한 일은 없었다. 일제강점기 시절 유럽으로 유학을 갔던 [[안익태]]가 헝가리에서 작곡을 배웠다. 이때 헝가리가 자랑하는 음악가인 [[코다이 졸탄]]의 문하에 있기도 했다. 한국독립운동사에도 헝가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, 북경까지 찾아와 [[의열단]]에 고성능 폭탄을 제공한 외국인 협력자가 헝가리인으로 추측된다. 그에 대해서는 [[마자르]]라고 불렸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다. 진짜 헝가리 사람인지, 그 정체는 무엇인지 온갖 다양한 설이 난무하는 미스테리한 인물. 2010년대에 개봉한 독립운동 관련 영화인 [[암살(영화)|암살]]에서도 언급되고 [[밀정(영화)|밀정]]에서도 조연으로 출연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